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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된 우연, 빛과 그림자 Controlled Coincidence, Light and Shadow

                                                                                                                  유진상 Jinsang YOO(계원예술대학교 교수) 2016. 11. 7.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우연들로부터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그것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각각의 우연은 매번 고유한 사건과 기억들로 이어진다. 예컨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 장소에 모여 동일한 방향을 향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매번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우연에는 고유성과 일반성이 동시에 내재한다. 그러므로 우연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통제되지 않는 것으로서, 최초이거나 유일한 것들, 반복하지 않는 것들, 신의 초월성, 빅뱅, 일인칭의 관점에서 본 탄생과 죽음, 사랑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것들은 대체로 현실로서 지각되는 영역의 ‘바깥’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이성이나 언어를 통해 이러한 사건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 사건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며 모든 것의 무의식으로부터 현실의 안쪽으로 도래하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통제 가능한 우연의 범주가 있다. 개연성, 확률, 통계, 조합, 대수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이것들은 반복하거나 중첩함으로써 이 세계의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을 지각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들은 예측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연의 조합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경우의 수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한 형식을 띠는 것이다. 마치 로또처럼.

 

          임정은의 작업 역시 두 개의 상반된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사건과 반복이 그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사건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수많은 사각형의 유리들을 벽면에 수평과 수직으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이는 그 위에 떨어질 조명을 전제로 한 제작방식이다. 이 개별적인 유리판들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육면체의 형태가 완벽한 평면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유리판 위에 임의의 방향에서 벽면을 향해 빛을 가하게 되면 벽면 위에는 흡사 비-물질적인 육면체가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그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실제로 이 육면체의 그림자는 평면으로부터 드리워진 것인지 아니면 입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호하게 평면적인 동시에 입체적인 대상으로 지각된다. 벽 위에는 이와 동일한 그림자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 많은 사건의 단위들은 반복을 통해 더욱 커다란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 혹은 임의의 패턴을 구축한다.

 

           임정은이 사용하는 재료는 투명한 유리, 반사하는 거울, 스테인리스스틸과 빛이다. 즉 빛의 투과와 반사가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예상하듯이, 이 간단해 보이는 투과와 반영의 프로세스 안에서 양방향으로 전개되는 복잡한 개념적 교차와 중첩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두 개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삼차원의 사물(유리판)이 차지하는 공간을 이차원의 그림자로 변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차원의 이미지(육면체의 드로잉)를 삼차원의 환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빛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어떤 사물들의 표면에 닿거나 사물이 빠르게 열로 변환할 때 비로소 존재를 드러낸다.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빛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브제와 벽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연결해주는 것은 빛이지만 실제로 그것이 지각되는 방식은 ‘빼기’, 즉 빛이 닿지 않거나 변형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자는 빼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림자는 빛으로부터 사물을 뺀 것이다. 빼고 남은 빈 공간에는 빛을 가리고 남은 잔상이 드러난다. 보통은 빛에 의해 뒤덮이지 않는 본래의 흐릿함이나 사물의 어두운 표면이 남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물을 투과하면서 그 사물의 색을 띤 빛으로 덧입혀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는 항상 부정(不正) 혹은 음의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부정의 기호로서 작가는 일관되게 육면체를 사용한다.

 

            사각형은 중력과 넓이를 표시한다. 수직선은 모든 중력에 대해 일치하거나 저항하는 방향성을 나타내며 수평선은 그러한 중력에 반하여 일정한 높이에서 평형을 이룬 상태를 보여준다. 육면체는 이 사각형을 3차원에 공간 속에 연장한 것으로, 임정은의 작품 속에서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그는 기하학적이면서 동시에 입체적인 공간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기호로서의 육면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n'= n+1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공간과 차원의 관계에 있어 육면체를 모티브로 한 여러 사례들을 20세기 초의 현대미술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가들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카시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엘 리시츠키(El Lissitzki)를 비롯한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들, 조셉 알버스(Joseph Albers)를 위시한 기하학적 추상의 대가들이 있다. 이들에게서 엿보이는 공통적인 의도는 사각형의 구성을 통해 삼차원의 공간을 평면 위에 투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뒤샹은 각각의 다른 차원들이 상호 연결되는 방식을 통해 무한대의 물리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들을 지시하는 방법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 과정은 n차원에 드리워진 n+1차원의 그림자에 대해 분석하는 방식이었으며 그 자세한 내용을 ‘흰색상자’로 불리는 <A l'infinitif>에서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사각형과 육면체의 관계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축-표면으로 잘린 육면체는 사각형이 된다. 이 사각형은 무한한 표면 위를 이동하거나 하지 않으며, 부동의 상태로 머문다. 대신 그것은 표면의 사각형 단면으로서 제자리에서 회전한다

.(The intersection of a cube by the hinge surface will be a squqre : This square must not move on the infinite surface, must stay motionless, and yet rotate about itself as a square section of a surface. - “A l'infinitif", 마르셀 뒤샹)

 

           육면체의 단면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사각형이어야 하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것은 보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육면체가 존재하는 공간은 3차원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수의 육면체가 제자리에서 반복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3차원의 그림자는 4차원의 그림자와 기본적으로 같아 보인다.

 

         4차원 공간 속의 형태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여기서는 3차원의 그림자로 보이게 된다.(The shadow cast by a figure in 4 dim. : on our space is a shadow in 3 dim. - 상동)

 

            그러나 운동과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4차원의 공간에서 육면체는 수없이 많은 육면체로 나뉘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멈춰있는 주사위를 영화로 기록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주사위가 구르거나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미 4차원의 공간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임정은의 작품에서도 육면체는 수 십 여 개의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것으로 제시된다. 마치 마이브릿지(Muybridge)의 연속사진을 무작위로 나누어 공간 위에 흩어놓은 것처럼 이 육면체들 역시 벽면 위에 수없이 많은 편린들로 흩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복수의 광원들에 의해 다시 수많은 그림자들이 투사되어 있다. 그것은 흡사 4차원을 초월한 다른 공간으로부터 현실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4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에게 시간적 질서와 엔트로피적 전개가 필연적인 것이라면, 5차원 이상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바라보는 존재에게는 이 모든 필연성은 사소한 일화에 불과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러한 세계의 그림자인 것이다.

 

           ‘원근법적 왜곡’ 혹은 ‘왜상’으로 번역하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는 원근법을 이용하여 왜곡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압축하는 기법을 가리킨다. 특정한 시점의 위치만 파악한다면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이미지의 본모습을 직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법은, 다른 표현으로는, 시점을 감추는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시점의 은폐는 주체가 그것의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시점과 소실점의 위치가 바뀌고 주체가 있던 중심의 자리에 타자가 들어서면서 이로부터 주체-관객-타자-작가의 시점이 끊임없이 명멸하는 순환적 시점이 도래하는 것이다. 임정은은 자신의 육면체들에 ‘왜상’을 적용하면서 무수하게 파편화된 시점들을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용하는 유리판은 단지 빛의 투과 뿐 아니라 반사의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무한하게 피드백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고 반사의 효과를 떠올렸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현실이 수없이 많은 지각 및 시점들의 상호반영과 상호주체적 동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마주보는 거울의 무한한 재귀성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다.

 

             통제된 우연이란 ‘바깥’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비-화학적 환각(natural high)를 통해 비-의존적으로 ‘트랜스’(trance)를 경험하는 것처럼 ‘통제된 우연’은 광기, 무의식, 물성, 타자를 우리의 지각과 의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전술, 계획을 가리킨다. 임정은은 빛과 그림자, 투명함과 반사, 빛의 음영과 산란, 그리고 왜곡된 기호들의 투사와 중첩을 통해 의도적인 혼돈과 추상적 재구성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을 훌리오 르 팍(Juio le Parc)의 광학적 세계관을 잇는 계보 속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정은의 작업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서사는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부터 투사된 기하학적이고 왜곡된 그림자’라고 하는 점에서 르 팍의 순수하게 광학적인 세계와 달라진다. 임정은의 작품세계가 스스로의 서사를 어떻게 극적으로 예시해 나갈지 기대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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